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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다른 페이지의 내용을 복사해서 편집하였습니다. 정리가 되는 대로 정성껏 집필하겠습니다. -

 

임실성당의 역사

전북 임실군 임실읍 중동로 10번에 자리잡고 있는 임실 성당은 1956년 9월 6일 남원 성당에서 분리되어 본당으로 승격되었습니다. 전주교구 제3대 교구장이신 김현배 주교님의 1군 1본당 원칙으로 임실읍 성가리의 작은 집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간 임실성당은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교회로 발전하면서 내실을 다지는데 노력해 왔고, 농촌이라는 특성을 고려하여 신자들 뿐 아니라 지역민들의 의식개발과 소득향상에 기여해 왔으며, 도시화의 물결 속에서도 꾸준히 교세를 늘리며 발전해 왔습니다. 농촌 인구가 계속 감소하면서 신자수가 줄고 있었지만, 35사단 임실 이전 및 일진제강 임실 유치 등으로 다시 임실 지역에 활기가 되살아남과 더불어 신자수도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초대 주임에 이상화 신부님이 임명되었으나, 고령에다 노환으로 부임하지 못하고, 전주교구청 당가(현재는 관리국장)인 김이환 신부님이 초대 주임을 겸임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1957년 새로 서품된 김치삼 신부님이 그해 4월 30일 보좌신부로 임명되어 본당에 상주했으나 얼마 되지 않아 군종으로 입대하게 되었습니다. 그해 8월 26일 김후생 신부님이 제 2대 주임신부로 임명되었습니다. 김후생 신부님은 오래 전부터 건강이 좋지 못하였으나, 부임 후 덕치(덕치면 회문리)와 물우리 공소를 설립하고, 1958년 8월 29일 임실읍 이도리에 성당 부지를 매입하고 기공식을 가졌습니다. 전주교구청으로부터 시멘트 1,000포를 지원받은데 힘입어 초대 회장인 황봉수 씨와 김종태 씨 등 본당 신자 그리고 신전·두실·성수·공소 신자 200여명이 합심하여 노력봉사를 하는 등 성전 건립에 힘을 모았고, 1959년 5월 10일, 성당(129평)·사제관(67평)·수녀원(9평)을 준공하였고, 그해 5월 14일 김현배 주교의 집전으로 낙성식 및 봉헌식을 갖게 되었습다. 한편 성당을 신축하던 시기에 구호물자(480양곡)를 지원받아 가난한 지역 주민들에게 나누어 줌으로써 청웅면 소재지, 덕치면 물우리·사곡리·가곡리·천담리, 신평면 소재지 등에 신자가 생기게 되었고, 신자 수가 증가하게 되었습니다.

 

임실성당의 발전과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교회

 1961년 1월 11일 성전 신축에 전력을 다하다 건강이 악화된 김후생 신부님이 휴양하게 되고, 임시로 벨기에 출신으로 한국 선교사로 나온 지정환 신부님이 임명되었는데, 이때 인보성체 수도회 수녀님 2분이 부임했습니다. 그러나 지정환 신부님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전동 성당 보좌로 전임되고, 박성운 신부님이 1961년 4월 13일 제3대 주임신부님으로 임명되었습니다. 박성운 신부님은 본당 내에 강당을 신축하고, 강진면 소재지에 700여평의 부지를 매입하여 강당을 신축하였을 뿐 아니라  성수 공소의 강당도 신축하였습니다. 또한 덕치면 사곡리, 관촌면 회봉리, 성수면 성수리의 산을 구입하고 개간 사업을 벌여 지역의 어려운 주민들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주었습니다.
 1964년 6월 10일 박성운 신부님은 함열 성당으로 전임되고 지정환 신부님이 다시 돌아와 제4대 주임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교회의 적극적인 사회 참여를 주장해 온지정환 신부님은 산간 지대의 어려운 농촌 현실을 인식하고 신자들 뿐 아니라 농민들의 소득 향상, 나아가 농민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방편으로 유산양 사육을 장려하였고, 산양 사육 농가가 증가하자 임실군 임실읍 성가리에 대지 200평을 구입하여 건평 7평의 흙벽돌 건물로 양유처리 시험 공장를 건립하였습니다. 그리고 유산양 사육농가 10가구를 중심으로 임실 산양 협동조합을 설립하였으며, 1968년 6월 20일에는 총건평 39.6평의 새공장을 건립하였는데 이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치츠를 생산하게 되었는데, 바로 이 공장이 한국 최초의 치즈 생산 공장입니다. 여기에서 나온 치즈는 서울의 유수한 호텔과 백화점 등로 공급되어 지역민들의 소득향상에 일조하였고, 1980년 치즈 공장을 신용협동조합에 이양하여 완전히 지역주민들에 의해서 운영하도록 했습니다. 또한 1967년 12월 31일에 설립된 임실 신용협동조합 역시 교회의 적극적인 노력에 힘입어 설립되었다. 이처럼 임실 본당은 지역민의 소득향상을 위해 노력하면서 지역사회에 새바람을 일으켰습니다.

  이 후 지정환 신부님은 1969년 12월 31일 농촌사목 전담신부로 전임되었고, 제5대 주임에 서석기 신부님이 임명되었습니다. 서석기 신부님은 어린이 놀이터를 개설하고, 개방하여 놀이 공간을 마련하였고, 1972년에 부임한 제6대 김진소 신부님은 임실 성당 주보인 '길'을 발간하여 신자들의 신심앙양과 열린 교회로 나가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였습니다. 이 당시는 유신체제로 모든 사회 활동이 통제를 받던 시기였음에도, 김진소 신부님은 신학생 시절 부정부패 추방을 위한 시위를 주도한 경력이 있었고, 당시 전주교구는 유신체제에 정면으로 저항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보기관의 감시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1973년 8월 17일 김진소 신부님이 전임되고,  김반석 신부님이 제8대 주임으로 부임하였습니다. 이 시기에 수녀원이 철수하게 되는데, 이것은 정부의 공업화 우선 정책에 따라 도시화 현상이 급격히 증대되고 이농현상이 심각하게 대두되면서 신자 수가 격감되어 본당 재정 형편이 어렵게 되자 어쩔수 없이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제9대 박중신 신부님을 거쳐 제10대 전대복 신부님이 1976년 12월 7일 부임하여 임실본당에서는 처음으로 초등학생들을 위한 주일학교를 운영하게 되었고, 중.고 학생회를 조직하였습니다. 그리고 당시 신태근, 전자석 씨 등을 중심으로 농민회가 조직되어 의식 개발 교육 및 기도회등이 임실 성당에서 개최되었습니다. 또한 1979년에는 '노풍피해 보상운동'을 전개하여 보상을 받는 등 농민의 권익옹호에 일익을 담당하였습니다. 1980년 1월 5일 제 11대 왕수해 신부님이 임명되어 삼길 공소 강당을 신축하고 성서 교육을 위해 '베델성서'를 실시하였습니다. 또 임실 치즈 공장을 신용협동조합에 이양하여 완전히 지역 주민들에 의해서 운영되도록 하였습니다.

  1981년 1월 20일 제12대 주임으로 임명된 조정오 신부님은 신심 단체인 레지오 마리에 창설에 노력하면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관촌 공소 성당을 신축하였습니다. 1984년 5월 10일 제13대 박종근 신부님이 임명되었습니다. 박신부는 오수 공소 강당을 신축하고 성당 지붕 및 사제관 지붕 보수공사를 마쳤으며, 1985년에는 '소값 보상을 위한 기도회'등을 개최하여 농민의 권익투쟁에 적극 나섰습니다. 또한 공소의 주일학교 운영과 평신도들의 단체 결성을 적극 후원하여 신앙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데 노력하였습니다. 제 14대 박인호(1987. 5. 14) 신부님 때에는 수녀원을 새로 지어 수녀님들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또한 농민의 권익보호에 앞장서 '고추 전량 수매를 위한 단식', 농민시위와 관련해 실추된 임실군민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제15대 김기수(1990.5.7) 신부님 때에는 성당의 전기시설과 개보수 작업등을 새롭게 했으며, 오수.관촌, 강진 공소 등에 신심단체를 결성하였습다. 제16대 전종복(1994.1.29)신부님을 거쳐 제17대 박종탁(1994.9.3) 신부님이 사목하였습니다. 제16대 전종복 신부님을 거쳐 제17대 박종탁(마태오 1994.9.3)신부님 때에는 6개 공소의 전기장판 시설과 도배 및 개보수 작업등을 새롭게 했으며 울뜨레야...레지오를 활성화 하였습니다.  제18대 정천봉(베네딕도) 신부님 때에는 본당의 지붕보수 및 교육관(30평)을 신축하였으며 ('99.4~7월) 담장 및 대문공사를 완료하였고,  제19대 유종환(마태오 2000.1.29임명) 신부님이 사목하게 되었습니다.